결혼 후 자연스럽게(?) 정해진 우리 가정의 돈 관리 방법에 대해 적어보려 한다.
경제권을 누가 가질지, 어떻게 돈 관리 방법을 합의할지 고민하는 데 있어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결혼하기 전 친구들과 종종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다.
"나중에 결혼하면 경제권은 어떻게 하고 싶어?"
"보통 엄마들이 주로 관리하고 아빠는 용돈 받던데?"
"난 돈 관리하기 귀찮아... 그냥 남편한테 맡기고 마음 편하게 살래"
"여자가 무조건 더 잘 관리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내가 더 잘할 것 같은데?? "
"어차피 맞벌이니까 각자 알아서 관리하면 안 되나?"
실제 결혼한 30대 유부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사례는 무척 다양했다.
어떤 30대 후반의 부부는 각자 알아서 투자·저축·소비하고 생활비만 함께 지출하는 방식을 쓴다고 했고,
또 어떤 부부는 매월 20~50만 원 용돈제를 시행하고 있다고 했다.
관리 주체는 남편인 가정도 있고 아내인 가정도 있었고,
심지어 어떤 가정은 서로의 소득 상황, 지출상황도 제대로 모르고 있더라.
가정마다 다양한 방법으로 돈 관리를 하고 있었다.
옳은 답은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나는 결혼 전부터 내심 원하는 관리 방법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용돈제.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결혼을 하면서부터가 진짜로 돈을 모을 수 있는 시점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미혼 일 때는 앞으로의 인생을 가늠하고 목표를 세우기에는 뚜렷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오히려 관리주체는 상관없었다.
남편의 통장에 돈이 다 들어가 있어도, 내게 무언가를 숨기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결혼 전부터 남자 친구(현 남편)에게 종종 경제관을 물어보았다.
경제권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 물어보고, 용돈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슬쩍 물어봤다.
미리 용돈제의 장점을 알려주며, 결혼 후 바로 도입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남편은 용돈제에 대한 자신의 부정적인 의견을 슬그머니 내놓았다.
"우리 회사 선배가 말하는데~..."
"용돈 받는 선배들의 모습이 짠해 보였고..."
"어떤 선배는 용돈제 말고 이러이러한 방식을 사용해서 가계 재정 관리를 하던데 무척 좋아 보였고...
이 방법의 장점이 블라블라블라"
남편의 부서에는 유부남 유부녀들이 많았는데, 자신들이 결혼생활에서 느낀 바를 아주 솔직하고 가감 없이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럼 오빠는 직접 돈 관리를 맡고 싶어? 경제권??"
"아니.. 그건 또 아니고 (어쩌고 저쩌고 어쩌고 ) 각자 관리하는 건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나는 돈을 각자 관리하는 것은 절대 반대였다.
그 이유는 주로 3가지인데,
1. 이제 우리는 하나의 운명공동체인데 서로의 재산상황을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2. 원래 돈을 버는 것만큼 중요한 게 쓰는 것인데, 서로 관리하다가는 재정에 구멍이 생길 수 있다. (갈등의 소지 있음)
3. 우리의 목표(내 집 마련!)와 현실 재정상황과의 괴리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목표 달성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이렇게 용돈제에도 거부감이 있으니 일단은 후퇴.
위기감에서 온 경제관 합의
그리고 결혼식을 마친 후
나는 남편에게 먼저 내 모든 계좌 잔액을 공개했다.
단 1원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보여주면서 남편에게도 계좌 잔액을 보여달라고 했다.
남편이 단독으로 전세계약을 했고, 마이너스 통장에서도 전세금 일부를 충당했기 때문에 남편의 계좌는 마이너스였다.
(결혼식 전까지는 마이너스통장에서 이자가 나가더라도 돈을 합치지 않았다)
나는 가장 먼저 남편의 마이너스 통장을 전부 메꾸어서 잔액을 0원으로 만들었고, 재산 현황을 정리 후 앞으로 매달 가계부를 작성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곧바로 용돈제 도입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직 나도 어떻게 우리의 재산을 관리하는 게 좋을지 몰랐기도 했고,
미혼일 적의 경제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적금이든 주식이든 뭘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자의 통장 잔액은 그대로 남겨둔 채, 한 달 가계부 작성을 시작했다.
그리고 용돈제에 대한 내 미련을 가계부에 반영시켜서,
각자 개인적으로 사용한 금액(구분하자면 용돈 지출)은 자동으로 합산되도록 했다.
사실 막연히
'우리는 돈 많이 쓰는 스타일이 아니니까 크게 문제없겠지~'
라고만 생각을 했었다.
실제로 한 달이 다 되어가던 시점에도 아무런 위기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는 식사의 대부분을 직접 만들어 먹었고,
외식은 거의 하지 않았으며,
배달도 가끔 시켜먹었다.
돈이 드는 취미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사치를 부리지도 않았다.
결혼식 후 첫 번째 달에는
"그래... 원래 첫번째 달에는 그 전까지의 소비지출이 반영되니까 결혼식 때문에 이렇게 많이 나온 걸 꺼야 ㅎㅎ"
"두 번째 달부터가 진짜 시작이지. 첫번째 달은 볼 것도 없어. 두번째 달을 보자!!"
라고 서로를 안심시켰다.
그런데,
두번째 달의 가계부가 너무나도 이상하더라.
상여가 나와서 수입이 많은 달임에도 불구하고 모인 돈이 너무나도 적었다.
고정비용 약 90만 원을 포함하여 생활비 합계가 440만 원에 육박하더라. (???)
(금액을 보고 내 눈을 의심했다... 대체 엥겔지수가 얼마나 높은거야...)
가계부를 본 후,
우리가 내집마련의 꿈을 언제 실현할 수 있을지 까마득한 상황이고
남편도 나도 무조건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사실에 우리 모두 크게 공감했다.
그리고 그 목표를 위한 방법으로 용돈제가 적합하다는 나의 의견에 남편도 동의했다.
(2개월 연속으로 남편의 개인적 소비가 나보다 많았다는 사실에 충격받은 것 같기도 하다)
용돈제 순조롭게 시행 중
용돈제의 장점은 절대 그 이상의 소비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미리 정해진 예산 안에서 어떻게든 한 달을 버텨야 한다.
과도하게 적은 금액을 책정한 것도 아니니, 어떻게든 살려면 산다.
거기다 우리는 교통비, 통신비 등, 일상생활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지출은 용돈이 아닌 생활비로 반영시키기로 했다.
그러니 우리가 정한 40만 원의 용돈은 나쁘지 않은 금액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 경조사비도 용돈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나는 용돈 40만원 중
20만 원은 친정 부모님에게 용돈으로 다시 드리고,
10만 원은 친정 가족 및 친구들 경조사용으로 매달 적금을 들고
5만 원은 개인 취미용으로 적금을 들고
나머지 5만 원을 개인적으로 사용하기로 정했다.
(나는 소비하는 재미보다 모으는 재미가 더 큰 사람인 듯하다)
그리고 생각보다 월 5만 원 개인 소비는 어렵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중이다.
(물론 모든 일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뜻하지 않은 소비가 생기기도 했다 ㅠ)
한 가지 더,
용돈제이지만, 우리 남편은 신용카드만을 사용한다.
모든 지출은 전부 기록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에 현금을 쓰던 체크카드를 쓰던 신용카드를 쓰던 아무런 상관이 없다. ㅎ
물론 용돈을 어디에 사용하던 노터치.
만약 밝히기 싫은 지출이 있는거라면... 그냥 돈을 얼만큼 썼다 정도만 밝혀도 괜찮을 것 같다.
나는 결혼 전부터 결혼 후 가장 큰 변화는 돈이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는 내 수입/지출만 신경쓰면 됐지만, 이제는 나와 남편 모두의 수입/지출과 앞으로의 미래를 대비한 저축, 내집 마련, 투자 등등으로 인해 난이도가 오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결혼 후 가장 먼저 했던 것은 우리 상황에 맞는 가계부를 찾는 것이다.
그리고 써보니까 가계부 쓰는건 정말 정말 중요하다.
https://dawn-won.tistory.com/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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